노오란 불빛이 하나 둘 길에 꽃을 피우는 시간. 시원한 여름바람에 소리를 실려 보내듯 휘바람을 불며 한손은 검정색 양복바지 주머니에 찔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불꽃이 끝나는 거리 속에서 한 남자가 서서히 형상을 들어낸다. 그 남자는 점점 가까올 수록 다양한 표정을 짖는다. 조금 멀리 있었을 때는 한껏 멋부린 표정을 내빛추더니 조금 가까워지니 험만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섰을때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고운 그 눈에서 꼭 물방울이 떨어 질것 같지만 끝내 아슬하게만 있는다. 그에비해 그의 입꼬리는 활짝 귀까지 올라가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의 시원한 웃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군산거리에서의 밤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구시가지라고 불리는 곳에는 곳곳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집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가끔 거리를 구경하다가 보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어느 시골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만큼 군산은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영춘가옥이다. 지금시대에서 보아도 굉장히 좋은 터에 자리 잡고 있는 별장처럼 보인다.
이영춘가옥의 세부모습들이다. 지금봐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저 부품들. 특히나 타일 바닥이 굉장히 인상에 남는다. 분명 2,30년대에 만들어졌을 것인데 마감하며 제품의 품질이 정말 뛰어나다. 참 부러운 기술이면서도 저걸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얼마전까지 세관으로 쓰었다는 옛군산세관이다.
나는 저 빨간벽돌이 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에서 수입해서 써다는 소리를 듣고 참 많이 놀랬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많은 것들이 이미 진행되어져있었다. 불과 100년도 채 안된 과거인데 왜 그렇게도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옛은행이다. 건물은 꽤나 높고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들어가보면 일층이다. 대신 천장고가 어마어마하다.
저기에서 일본사람들이 돈을 저장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원통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여기엔 일본인이 착취한 돈도 있었겠지만 우리조상들이 그 일본인들 밑에서 일해서 자기 가족지키기 위해 번 그 귀한 돈들도 분명 같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유일하게 있다는 일본식 사찰 금광사(동국사)이다. 여기가 특별한 이유는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도 있지만 유일하게 자신들의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비석이 있다.
금광사와 교류하고 계시는 일본 스님과 일본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반성문과 같은 비석이다.
지금 아베정권이 독일과는 정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과거를 인정하고 사죄하려는 노력의 불씨가 아직도 살아 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금광사 뒤쪽 동산(?)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한 공간에 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나무와 일본식사찰이라고 생각하니 왠지모르게 저 대나무도 일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저 대나무의 종은 순우리나라이다. 그리고 전라남도 내륙 쪽은 대나무가 예전부터 꽤 많이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저 종은 아마 한국에만 있는 양식으로 알고 있다. 일본식 사찰에 한국적인 모습이라 아무리 일본이 무력으로 우리를 진압하고 지배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것 같은 느낌에 가슴 한쪽 어딘가에서 짠하면서도 참 고맙고 또 고마웠다.
히로쓰가옥의 일본식 정원이다. 생각보다 넓지 않은 정원이고 내가 배우던 전통적인 일본식 정원은 아니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확실히 일본의 느낌이 있는 정원이다. 아무렇게나 막 심은 것같은 나무들이지만 저 안에 일본의 느낌이 나오는 배열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니 애초에 우리의 마당과 뒷뜰과는 먼 방식으로 꾸민것 같다.
히로쓰가옥의 대문이다. 확실히 좀 섞여 있는 느낌이다. 일본의 대문이라는 느낌보다는 사대부집의 대문의 가운데만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그리고 옆으로 둘러싼 담은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게 매끈하게 마감이되어 있어서 또 일본의 담장이라는 느낌을 준다. 근데 안쪽의 작은 마당은 우리네 마당처럼 흙판이 좀 있고 담 바로 아래에만 식물이 있는 점, 그러나 현관으로 이러지는 길은 일본 특유의 말끔한 처리가 돋보이는 돌길로 했다.
금광사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일본이 만든 집이라고 하지만 우리네 정서를 무시하면서까지는 만들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군산을 둘러보고 왜 내가 만난 모던보이가 활짝 웃거나 마음껏 눈물을 흘리지 못한것인지 알 것 같았다.
군산에서는 근대역사를 지속적으로 지키고 복원해나갈 계획이다. 혹자는 이것이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이는 이 슬픈 역사를 남겨서 뭐할 것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슬픈 역사도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다. 우리가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워지는 가벼운 상처가 아니다. 가릴 수 없는 상처라면 차라리 제대로 연구해서 제대로 바라보자.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너무 외면해왔다. 하지만 아플수록 들어다봐야한다. 그래야 건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그 남자가 울던지 웃던지 진정한 표정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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