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떨하게 첫날을 보내고 본격적인 대만에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의 아침은 매우 이른 시간에 시작이 되었다. 왜 야하면 아침 식사가 기다려져서 설렘에 눈이 번쩍 떠졌기 때문이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를 선정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조식을 객실까지 원하는 시간에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그래서 전날 객실로 돌아가기 전에 로비에서 아침식사 메뉴와 식사하기 원하는 시간을 예약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있으니 내가 어제 신청한 그 시간에 객실 문에 인기척이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나무쟁반 위에 너무나도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조식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지만 호캉스 할 때 큰 마음먹고 룸서비스를 시키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해 주기엔 충분했다.
특별할 것이 없던 대만에서의 이튿날을 작은 조식 하나로 특별하게 시작하는 것 같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매우 행복하다.
대만에 처음 여행을 온다면 무조건적으로 다들 한다는 택시투어를 하기 위하여 중산역으로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택시투어는 기본 4인 이상부 터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 시간을 어기면 안 되기에 서둘러 준비한다. 아직은 타이베이의 지리에 약하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도 모르고 또 한자 하나 모르는 내가 잘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긴장감을 가지고 중산역으로 향한다.
택시투어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예스진지를 선택하였다. 사실 택시투어도 한국에서부터 예약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그저 친구가 예전에 좋았다고 소개해준 회사에 대만에 도착해서 다행스럽게도 예약을 한 것이다.
대만은 아열대성 기후에 섬나라답게 비가 자주 온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비처럼 한 번에 많은 양이 온다거나 소나기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비가 아니다. 하루 종일 촉촉하게 보슬보슬 오거나 추 척추적 잠시 세게 내리고 만다. 그래서 대만 여행 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정말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행운의 마일리지가 부족한지 엄청난 폭우는 만나지 않았지만 맑은 하늘보다는 비구름 가득한 하늘을 더 많이 즐겼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예스진지 투어에서 첫 번째 관광지는 예류 지질공원이다.
예류의 지질공원은 작은 곶에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암이 멋진 곳이다
작은 곶이라고 하지만 꽤 넓어서 한 시간 정도의 관광시간이 주어졌지만 열심히 빠르게 봐도 시간이 부족했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는 '여왕 바위'도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초코송이 바위라고 부르고 싶은 벌집 바위나 정말 어떻게 저렇게 풍화 작용을 받았는지 신기한 촛대바위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곳에서 바위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볼거리가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화석이다. 꽃무늬 같은 화석도 있었으며 조개 모양이 남은 화석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바다의 표정이 오른쪽과 왼쪽이 너무도 달랐다.
한쪽은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면서도 비가 와서인지 매서운 파도가 철썩이는데 반대편은 고요한 파도만이 여전히 바위들을 깎고 있었다.
또한 예류 공원에서는 바위와 파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엔 없는 독특한 모양의 식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 하다.
비가 와서 기대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는데 예류 공원에서 대만만의 독특한 자연을 본 것 같아서 너무 행복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대만의 해안 자연에 푹 빠져있을 때 슬슬 배 속에서는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고 투어도 서둘러 두 번째 장소로 날 데려가고 있다.
예스진지의 두 번째!! 풍등으로 유명한 스펀이다. 대만 여행을 다루는 매체들을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소원을 적은 풍등을 날리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도 풍등 날리는 풍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대만 하면 자연스럽게 기찻길 위에서 풍등 날리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대만 = 풍등 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투어를 예약하면 유일하게 알고 기대했던 것이 풍등 날리는 것과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닭날개 볶음밥이었다.
스펀 지역에 도착하면 한적한 기찻길을 따라 풍등 가게가 몰려있는 기찻길로 들어간다.
참고로 이 기찻길은 폐선이 아니라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최대한 몸을 빠르게 피해야 한다. 주변 상점분들이 모두 안전에 주의해주시기 때문에 나만 정신 차리면 큰 사고가 날 일은 없다.
풍등 날리는 기찻길은 비가 오나 날이 좋으나 사람들도 북적이고 여기저기서 사진 찍고 풍등 날리기에 정신이 없는데 바로 잠깐만 옆으로 나오면 세상 조용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숨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하고 푸른 나무만이 반겨주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래도 관광객이니 할 일은 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풍등은 따로 정해진 것도 있지만 우선 풍등의 색상부터 골라야 한다.
색상마다 건강, 재물, 애정 등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색상을 고른 후 그 위에 원하는 소원을 적으면 된다.
현대에는 선택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인지 웬만하면 좋은 조합으로 미리 만들어서 추천해준다.
풍등에 고심해서 소원을 적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보면 택시투어 가이드분이 미리 주문했던 닭날개 볶음밥을 가져다주신다.
닭날개 볶음밥이라고 해서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비큐 소스를 바른 닭날개에 중국식 볶음밥으로 속을 채운 음식인데 생각보다 매콤한 맛이 있다. 참고로 나는 신라면도 매워서 못 먹는 사람이라 매운 것 같고 일반 한국인들에겐 느끼하지 않게 한두 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닭날개 볶음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원의 생체리듬을 가진 나는 슬슬 배가 고파졌다. 가이드분에게 물어보니 광부 마을에 가서 그 시절 광부들이 먹었던 도시락이 점심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래서 들뜬 마음을 가지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는 광부 마을에 확실히 가고 있다고 알려주듯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달린다.
너무 꼬불거리는 길에 잠시 멀리가 날 때쯤 택시가 멈추었다. 아무것도 없는 산 중턱쯤에 멈추어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가이드분이 황금 폭포라며 작은 폭포를 보여줬다. 전날도 오늘도 비가 꽤 많이 와서 폭포에서는 물이 부족함 없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물이 내려와서 그런가 위험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어려웠다. 그래도 단체 기념사진은 한 장 남기고 다시 마을로 출발한다.
광부 마을은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광산 관광지다. 진짜 마을은 광산 아래에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방문해도 오버 투어리즘으로 마을 사람들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는 조금 등산 같은 산책을 해야 한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을길, 산길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서 행복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같이 간 일행들은 이 시간이 썩 좋은 시간이 아니었나 보다.
안개와 수분을 잔뜩 머금은 나무들과 풀들이 뿜어내는 살짝은 비릿할 수 있는 산내음을 맡으면서 걷다 보면 작은 산골짝도 만날 수 있다. 날이 좋지는 않았지만 산골짝 시냇물 소리를 듣다 보면 절로 신원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받는다.
몸도 마음도 청량함으로 채우며 걷다 보면 센과 치히로에 나올 법한 동굴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리 가이드님의 숨겨둔 무기가 나온다.
가오나시 분장을 하고 고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아주 작은 이벤트이지만 정말 센과 치히로의 한 장면 같고 그 시간만큼은 모두 즐거워서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온전히 즐겼다.
(지금 다시 간다면 호텔 델 루나의 저승길 승강장 같아서 장만옥같이 꾸미고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아직 도시락을 먹으려면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 산 정상에 다 와간다는 느낌이 들 때 가이드님이 반대편 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처음 딱 보자마자 산이 사람 얼굴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왜 야하면 나는 당연히 사람의 정면 모습을 생각하고 산을 쳐다보았고 나중에 옆모습이라고 알려주였지만 그래도 어느 봉우리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상상이 안돼서 그저 흔한 산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고 나면 신기하게도 산이 정말 사람의 옆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때부터는 신이 나서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면서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 좀 부려보았다.
광부 도시락은 광부 마을에서도 중간 중심 지점쯤에 위치한 식당에서 제공되었다. 이 식당은 개인적으로 방문하든 택시, 버스 투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식사를 하는 듯하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친숙한 얼굴의 유명인의 사진부터 한글 안내판, 그리고 도시락을 먹을 때 제공되는 김치까지! 광부 도시락을 먹어봤다면 99% 확률로 여기서 먹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광부 도시락은 기본 돼지고기가 제공된다. 꼭 우리나라의 제육덮밥 느낌이다. 하지만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닭고기로 된 도시락을 제공받았다. 중화권의 음식이 입맛에 살짝 맞지 않는 나도 이 도시락은 큰 부담감 없이 즐겼다. 참고로 김치는 편식하는 바람에 먹어보질 못해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일행들이 김치를 참으로 맛나게 즐기는 것은 지켜보았다.
광부 마을에서는 크게 볼거리가 없어서 도시락으로 배만 채우고 오늘의 핵심 지우펀으로 향한다.
(광부 마을에서 광산 구경을 할 수 있지만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보기엔 별로라고 가이드님이 말씀해 주셨다.)
지우펀은 내가 생각한 딱 대만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중국 특유의 그 빨간 분위기와 어딘지 모를 일본의 삭막한 느낌까지 모두 갖춘 관광지이다. 특히 이날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날도 적당히 흐리고 일몰시간까지 겹치니 정말 영화의 한 장면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대만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서 좋았다.)
지우펀 관광의 시작은 역시나 먹거리로 시작한다. 고소함이 일품이라는 땅콩아이스크림과 대만식 소시지 구이 등 지우펀의 작은 거리를 걷다 보면 먹을 것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딜 가나 보이는 홍등과 습한 나라 특유의 이끼 같은 식물들이 어우러진 거리의 모습은 싱그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내어준다. 일몰이 가까워질수록 가게마다 내건 홍등에서 주황색 빛을 내뿜고 있는 풍경만 보더라도 꼭 누군가 따뜻한 차 한잔 권하면서 그날 특별하지도 않을 일과를 이야기하면서 소소하게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 같다. 참으로 특별할 것 없는 홍등인데 이렇게 모아놓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보니 새삼 빛과 색이 가진 매력에 매료된다.
아쉬움을 한가득 안고 이제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기 전 지우펀 시작점쯤에 있던 큰 절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중국인답게 절의 모습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 화려함이라고 하면 겨우 공포나 단청의 화려함일 텐데 여기는 색부터 기둥까지 화려함 그 자체이다. 사원을 보면서 감탄도 하지만 속으론 직업병은 이래서 속일 수 없다고 생각도 한다. 그 누구 하나 이 사원의 장식과 색채에 대해서 눈여겨보지도 않으며 그저 지나가기 바쁜데 나는 굳이 서서 사진을 찍고 이건 무슨 양식일까 생각하며 관심도 없는 동행인에게 저 장식과 색을 보라며 호들갑을 떨기에 바빴다. 나중엔 대만의 전통건축도 살짝 공부해 가면 대만이 조금 더 많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아서 살짝 설레기도 하다.
알찬 택시투어를 마무리하고 중산역에서 그날의 동료들과 헤어졌다. 중산역은 처음이라서 저녁을 해결하기 막막했다. 그럴때는 블로그 검색이 최고다. 다른 SNS를 하지 않는 나에게 블로그는 생존필수품 같다. 그러나 모두들 가는 가게는 가기 싫어서 그냥 식당이 많은 지역만 검색해서 무작정 중산역 근처의 카페거리를 찾아갔다. 카페거리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도 현지 20대들에게 인기 있어 보이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줄이 한 블록 정도 길게 서있었다. 우리도 냉큼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식당인지 줄을 서있는 내내 외국인은 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나도 영어를 잘 못하고 그들도 영어가 익숙지 않아서 메뉴 선택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기본적으로 국물과 면을 따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잘 몰라서 세트메뉴 같은 것을 시켰는데 생간이 나와서 놀랐다. 제대로 되지 않는 의사소통으로 생간을 두부튀김? 같은 것으로 바꿨는데 진심 대만은 나와 입맛이 잘 안 맞는 게 확실한 것 같다. 면과 국물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두부튀김은 정말인지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국물에 찍어먹고 그냥도 먹고 잘만 먹던데 난 어떻게 해서 먹든 맛이 없다. 그래도 이번을 계기도 다시는 저 두부튀김에 대한 환상이 사라져서 좋은 경험이고 위로한다.
배고픈 건지 배 부른 건지 모를 저녁식사를 마치고 중산역 근처의 야시장에서 과일을 샀다. 대만 여행 오기 전부터 석가(Sugar apple)를 꼭 먹어봐야 한대서 조금 사서 먹어보았다. 생긴 것은 하얀 파인애플 같이 생겼는데 맛은 정말 최고다. 내가 생각한 달달한 과일의 끝이다. 왜 사람들이 대만 가면 과일, 특히 석가를 먹어보라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나에게 석가를 먹어보라고 한 사람들은 복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대만 여행을 계획하는 분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석가는 무조건 사먹어야 한다. 달달한 과일의 끝판왕이다. 달달한게 싫다는 분들에겐 오히려 추천하지 않을 만큼 달다. 그리고 사는 즉시 그날 먹어야한다. 조금 남겼는데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물렁해져 버렸다. 근데 달달함은 배가 되었다.
석가만큼 달달한 두 번째 날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또 다른 경험을 준비하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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